※ 소암이동식선생 회갑기념논문집 ‘도와 인간과학’ pp. 493-502에 실려 있으며, 2004년 8월 이동식선생님께서
교정을 보신 글입니다.
80년 12월 아카데미 하우스에서 이동식선생(李東植先生)과의 대화(對話)가 많은 회원들과의 사이에 있었고 81 년 6 월에 선생(先生)님의 새집에서 몇몇 후배들과의 사이에 2차 대화가 있었다. 글로 옮겨 싣기에 어려움이 있어서 1, 2차 모임에서 있었던 대화의 줄거리를 정리하여, 81년 7월초에 편집자가 단독 인터뷰를 하여 대강을 정리하고져 시도하였다. 이하(以下)는 그 대화 내용이다 (대담자 및 문책 : 문홍세(文洪世))
선생님과의 만남은 저 개인으로 말하더라도 약 20 년이 되었습니다. 늘 대하고 있으면서도 李선생님은 누구인가를 잘 모릅니다. “나를 이해하는 사람은 상당한 수준에 있다”고도 하셨고 그런 의미에서 고독하지 않나하는 강석헌 선생의 해석도 있습니다. 방화자(放火者), 불사조(不死鳥), 치료자(治療者), 복덕방, 고목나무 등등 보는 사람에 따라 긍(肯)·부정(否定)의 감정을 보이고 있습니다. 맨 먼저 선생님의 어린시절(時節)과 성장과정(成長過程)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아 영향 받은 사람들 얘기. 음 … . 증조부는 본적이 없는데 인천(仁川)서 무역을 했다고 고모에게 들었고, 장손(長孫)이 되어서 우선 부모(父母)의 영향이 크고 증조모, 조부모, 삼촌, 고모 영향을, 증조모가 무식해도「이리야마」라는 왜놈 중추원참의가 있었는데 “얘끼 이놈” 해서 그가 겁나서 도망했고, 조부는 30대(代)에 시베리아에도 다니시고, 뱃장은 증조모하고 할아버지로부터 받았지. 조부가 전설적인 인물이라, ×××가 자기 아버지로부터 들었다고 전해준 얘기인데, 노름을 좋아하셨는데 하루 저녁에 400원을 잃었다나, 집 한 채 값이라는데, 이튿날 새벽에 똥장구니를 지고 밭에 나가더라고. 거금 잃고 새벽부터 그럴 기분이 나느냐 하니까, “일을 해서 벌어야지, 또 노름할 수 있지 않나!” 하던 유명한 얘기. 6.25 때도 70 노인네가 비판적 얘기해서 한 때 유치장에 갇히었다고. 늙어도 노동해야 한다 하시고. 공무원도 반대, 상인은 거짓말한다고, 땅 파먹는 사람은 남을 해치지 않는다고, 관청이 있으면 자연 수탈한다고, 우리 집 애들도 판검사 공무원에게 시집 안 가려한다.
스케일이 크실 뿐 아니라 공짜 안 먹는다. 성실하게 일하신다. 이런게-.
그렇지 하루종일 일하셨지 방학 때 농장에 가면 늘, 일, 원두막에서 낮잠 자고나면 수박 주시고, 작은 농장-.
부친께서는-.
할아버지나 나보다 약하지, 북해도제대 농학부. 응, 그래도 내가 국민학교 때 방학 때 집에 오셨을 때 …해서 고등계형사 뺨을 탁 때리는 그런 정도의 것은 있었어.
자당께서도 한국적인-.
그렇지 별 트러블이 없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 아카데미에서도 말했지만 여동생이 잘 따르고 좋은 여성상(女性像)을 줬지. 형(兄)은 낳자 곧 돌아가셨고 나는 늘 장손(長孫)이라서 늘 영향이 있지. ×××도 선생님은 늘 남의 걱정을 하신다고 말했지만 늘 동생들, 집안 돌보려는-. 부친이 별로 안하니까 그게 관계 있을거야. 할아버지고 뭐고 틀렸다하면 내가 “쾅” 때리고 내가 가정 내에서 말하자면 바른 소리해서 꺾이지 않았다.
동생은 몇 분 되십니까?
남동생이 2 , 여동생이 1 , 나는 장손, 장남이라, 삼촌(三寸), 고모(姑母)의 사랑 많이 받았고, 선배가 있어서 학교에 데려가고 학교에서도 사랑을 많이-.
좌절, 저항을 만나신 것은?
서울대에 와서-.
frustration은?
frustration은 서모(庶母)하고, 위장병이 생겨. 하여튼 그래도 나하고 싶은 대로 다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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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우도는 십우도(十牛圖), 목우도(牧牛圖)라고도 부르며 참선(參禪)에서의 각(覺)의 과정(過程)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림은 송광사의 십우도 벽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