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1년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서 기획한 원로탐방의 하나로 한국정신치료학회 회원이기도 하셨던, 작고하신
고 김행숙 대한신경정신의학회 회원이 이동식 선생님과 대담한 내용으로 (‘원로와의 대화’ 1991 대한신경정
신의학회(하나의학사) pp.133-160), 2004년 8월 이동식선생님께서 교정을 보신 글입니다.
지난해에 고희를 맞은 소암 이동식 선생님을 성북동 자택으로 찾아간 것은 새해 첫 일요일인 지난 1월 6일 오후, 마침 사모님인 김동순 선생님은 중요한 약속 때문에 집을 비우신 때라 2층 서재에서 선생님께서 손수 끓여주신 향긋한 차를 마시며 까마득하게 우러러 뵙던 선생님을 탐방한다는 일을 추진하면서부터 생긴 긴장감이 어느새 풀려나갔다. ‘선생님과 같이 있는 것 자체가 치료’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지만 선생님에게서 방문자를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분위기를 이 날도 느낄 수 있었다.

평소 ‘도가 정신치료의 궁극적 형태’라고 말씀하시는 선생님은 누가 봐도 ‘도’의 ‘권위자’로 비춰지지만 스스로는 ‘권위자’라는 것은 없다고 강조하신다. 사람이 권위가 아니고 진리가 권위이며 따라서 진리를 추구하기보다 ‘권위자’가 되겠다는 사람은 이미 권위에 굴복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내가 확신하게 되면 부처가 한 말이든 공자가 한 말이든 프로이드가 한 말이든 그것은 그때부터 내 말이 된 것이야. 진리는 개인의 소유가 아니야. 깨달은 사람은 꼭 같은 거야.”

선생님은 또 투사를 없애는 것이 도나 정신치료의 핵심이라고 말씀하면서 자기집착이 망상을 만들어내므로 우선 자기집착부터 끊어야 하며, ‘자기 자신을 깨닫는 것이, 즉 자기반성이 도며, 정신건강은 반성능력이다.’라고 강조하셨다.

1941년 대구의전을 졸업하고 스스로도 ‘의사를 한다면 정신과 밖에 할 것이 없다’고 생각 했던 데다 선배의 권고도 있어 이듬해 경성제대 신경정신과 의국에 들어간 선생님은 독일 사람이 쓴 정신치료 책을 읽고, 히스테리 환자 2명에게 최면을 걸어 치료를 하셨다. 1950년 같은 의국에 근무하던 김동순 선생님과 결혼하신 뒤 선생님은 1954년 미국에 건너가 많은 임상경험을 쌓게 되었다.

“당시 어떤 후배의사가 미국에는 도둑이 없다는 등 온갖 예찬을 하더군. 길가에 쌓아 놓은 신문을 한 장씩 집어 들고 가는 것을 보면 그런 생각도 들었을 거야. 그 후배를 2년 뒤 귀국 길에 볼티모아에서 만났는데 도둑맞은 이야기를 하더군. 미국에 범죄가 얼마나 많은가는 내가 미국 갔을 때 미국인 동료의사의 첫마디가 도둑조심 하라는 말이었던 것으로도 바로 알 수 있었지. 그런데 이 후배는 당시 어렵던 미국행을 위해 애쓰는 사이 미국을 미화하는 망상을 형성하게 됐던거야. 그러니 미국사회가 잘 안보였던 거야.”

서양문화에 대한 선생님의 평가는 1958년 유럽으로 건너가 4개의 국제학회에 참석한 뒤 확실해졌다.

“학회 네 곳에 참석해보고 서양 사람들이 신통치 않다고 생각했지. 동양에서는 개인의 양심에 맡기는 일도 미국에서는 규칙이나 법률에 저촉되느냐 않느냐를 따지더군, 우리는 보통 상식적으로 아는 일도 그들은 심각하게 철학적 해석을 하고...”

선생님께서 ‘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미국서 연구를 마치고 귀국하여 한 역경위원을 치료하던 중 ‘도’는 정신치료이고 집착을 없애는 것이라는 점을 알게 되면서부터 였던 것 같다. 그 뒤 1968년 동양에서 카운슬링 철학이 없으니 카운슬링도 서양이론을 가져와야 된다는 식의 생각에 쐐기를 박기 위해 ‘한국에 있어서 정신치료 카운슬링의 철학적 정초(서설)’를 숙대 총장 윤태림 박사의 회갑기념 논문집에 쓴 것이 ‘도’에 관한 첫 논문이었다. 1970년에 한국철학회에서 하신 ‘도의 현대적 의의’라는 강연에서 ‘도’를 본격적으로 다루셨다. 지금은 ‘도’가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져 미국, 유럽등지와의 교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현재 세계의 정신치료를 통합한다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러한 일들은 나 혼자 힘으로는 안되지만 내가 없으면 어려운 것도 사실이야”라고 말하셨다.

1946년 신경정신의학회 창립에 참여, 65년에는 회장을 역임하셨고, 현재 정신치료학회, 팔공정신의학회 등, 국내외의 여러 학회활동을 통해 후진들을 적극 지도하시며, 김동순 선생님과 함께 동북의원을 운영하신다.

선생님은 학회활동에 대한 ‘열린 입장’을 갖고 계셨다. “신경정신의학회 주변에 각종 학회와 써클이 많을수록 정신의학이 전체로서 발전할 수 있어. 노는 서클도 좋고 공부하는 서클도 좋아. 이견을 두려워할 것도 없어. 이견이 많다는 것은 구성원들이 그만큼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는 뜻이야.”

누구를 찾는 아버님의 목소리가 들리자 아래층으로 내려가 무엇인가 차근차근 설명해 드리고 다시 올라오신 선생님을 많은 별명 중 어떤 별명을 듣기를 좋아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어떤 별명을 듣기 좋아한다면 그게 바로 집착이야”라고 웃어 넘기셨다.

“집착을 버려야 된다”는 선생님의 평소 말씀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고 있는가를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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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우도는 십우도(十牛圖), 목우도(牧牛圖)라고도 부르며 참선(參禪)에서의 각(覺)의 과정(過程)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림은 송광사의 십우도 벽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