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간 ‘불광’ 창립 25주년호인 1999년 11월호에 실린 이동식 선생님과의 특집인터뷰 기사입니다.
- 오늘을 밝히는 등불들 -
“하하하 ….”
나이 80을 눈앞에 둔 이동식(신경정신과 동북의원 원장) 박사. 그의 웃음소리가 참 경쾌하다. 정신의학 분야에 있어 그는 국내는 물론 국제 사회에서 주목받아온 세계적인 권위의 대학자이다. 하지만 그에게서는 그런 권위나 위엄 같은 것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마치 가까운 이웃의 할아버지처럼 이야기 중간중간 껄껄 웃고, 하나하나 이야기해주시는 말씀은 자상하기까지 하다. 참 편하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광덕 스님은 그를 ‘만날수록 좋아지는 사람’이라고 하셨던가 보다.

그러고보니 그는 참 젊어보인다. 많이 보아야 70, 도저히 80 나이가 믿기지 않는다. 더욱이 95년, 96년 직장암과 간 이상으로 두 차례의 큰 수술을 받았던 몸이라고는 더더욱 믿기 어렵다.

“더 건강해야 할 텐데 의사들이 시원치 않아가지고, 하하하…. 건강의 비결이 뭐 있나. 평상심이 도라는 말이 있지요. 자기하고의 대화, 졸음이 오면 자고, 목이 마르면 물 마시고, 배 고프면 밥 먹고. 자기하고 대화를 많이 하는 겁니다.
화가 나면 왜 화가 나나 자기 마음을 봐야지, 석가모니 부처님 깨달음의 핵심이 그거 아닙니까?
불취외상(不取外相) 자심반조(自心返照), 자기가 생각하는 것은 전부 착각이다 이거야. 자기 마음을 비추어보라, 불교 근본이 그거 아니겠습니까?
참선하는 게 쉬어라 그거밖에 더 있어요. 마음을 쉬어라 이겁니다.
육조단경에도 혜능 스님이 ‘응무소주(應無所住) 이생기심(而生其心)’이라는 말에서 깨닫잖아요. 집착을 안 한다 이거지요.”
반 농담처럼 웃음으로 시작한 그의 건강 비결이 어느새 불교의 진리로 다가선다.
그가 처음 정신의학을 공부할 당시는 같은 의사들조차 신경정신과 의사가 존재한다는 것을 모를 정도였다. 일제치하, 그리고 6.25를 막 겪어냈던 때였으니 그만큼 정신의학이라는 분야가 생소한 때였던 것이다.

1938년 대구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한 그는 무미건조한 의학 공부보다도 정작 언어학 같은 인문사회 분야를 공부하고 싶었다. 결국 인문사회 분야, 그리고 인간의 삶에 대한 관심은 그로 하여금 정신의학이라는 분야에 눈을 뜨게 했다.

하나를 완전히 이해할 때까지는 절대로 다음으로 넘어가지 않는 철저한 성격은 경성제국대학(현 서울대학교) 의학부 시절, 정신의학, 정신분석, 정신치료의 이론과 실제는 물론 어학공부를 비롯해 철학, 문화인류학, 심리학, 자연과학에 이르기까지 두루 섭렵하게 했다. 의학도로서 법문학부 철학과의 세미나에 참석했고 칸트, 쇼펜하워, 니체의 책을 원서 그대로 읽었다.

덕분에 그는 1949년 서울대학교 심리학과에서 정신분석을, 1951년부터는 대구대학에서 자연과학개론을 강의할 수 있었다. 그리고 54년까지 그는 서울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정신분석 강의를 계속하였다. 가르치는 일은 그 스스로도 큰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일이었다.

1954년 7월 정신분석을 좀더 공부할 목적으로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뉴욕대학교 신경정신과 레지던트로 근무하였고, 윌리엄 알란 손화이트 정신분석연구소에서는 일년여 일반학생으로 수강하면서 6개월간 수련을 받기도 했다. 57년부터는 아이오와주 체로키 정신보건원과 켄터키 주립 중앙병원에서 의사로 근무하면서 신경정신의학의 다양한 사례를 경험하였다.

그리고 59년 귀국 전까지 그는 미국 일부와 유럽을 비롯한 일본, 중동 등지를 둘러보고 국제정신치료학회, 세계철학자대회, 국제정신약리학회 등에 참석하며 새로운 시각에 눈을 떠갔다. 우리의 전통사상과 문화가 그 어디에 내놓아도 결코 뒤지지 않는 세계 최고 수준의 경지에 있음을 확인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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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우도는 십우도(十牛圖), 목우도(牧牛圖)라고도 부르며 참선(參禪)에서의 각(覺)의 과정(過程)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림은 송광사의 십우도 벽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