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3년 8월 3일 한국정신치료학회 사무실에서, 한국정신치료학회 (당시) 허찬희 국제교류위원장이
이동식 선생님과 대담한 내용을 녹취한 기록이며, 2004년 8월 이동식선생님께서 교정을 보신 글입니다.
H(허찬희) 아무래도 '道精神治療'에 대해서 우리가 이해하려면 선생님의 정신치료 경험을 시작부터 어떻게 해왔는지 그것부터 먼저 들어야 되겠습니다.
R(이동식) 그것은 전에 늘 얘기 했듯이 어릴 때부터, 국민학교 입학 전에 숙모가 스물 대살 되었는데 막 울고 불고 하는 걸 보고 '인생의 행복과 불행은 감정 처리 여하에 달렸다', '감정에 좌우되고 사람들이 어리석다'라는 생각을 하고 그래서 다른 사람을 이해를 하고, 내 자신을 이해하고, 남이 나쁜 짓을 해도 반드시 과거에 그렇게 된 원인이 있을 거다라고 생각하고, 남하고 싸우거나 공격을 하기보다 이해하려는 노력을 했다. 물론 (내가) 공격하는 게 전혀 없는 게 아니지, 그건 내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필요할 때는 공격하지만 안 그런 공격을 안 했다 이거지. 그러니까, (나는) 보통 우리나라 사람하고 뭔가 생각하는 게 만날 거꾸로 간다. 좋은 예로, 일본 및 외국에 대해서, 내 눈으로 보면 우리나라가 나은데, 국민성이나 문화 등 여러 가지가. 그러나 남들은 자꾸 서양, 중국, 일본이 낫다고 야단이야
H 그걸 어릴 때부터 느꼈습니까?
R 그렇지, 어릴 때부터. 해방 후에도, 해방이 된지 오래 됐는데 딴 사람들은 변경이 안 된다 이거라, 우리나라에 대한 인식이. 그래서 가만히 보니 '나는 원래 어릴 때부터 안 변했고 다른 사람도 안 변했다 이거지, 일제시대부터', 이런 결론이 났다. 국민학교 때 뒷집에 친구 어머니가 자기 아들과 내가 함께 있는 앞에서 '동식이는 꼭 중 같다. 인생에 대해서 환하다'라고 하는 말을 했다. 그리고 10살 전후에 사람들이 인격자라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위선자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게 또한 남하고 견해가 달랐다. 국민학교 때 사람을 처음 만나면 '이사람 진실한 사람이다' 한번 딱 보고 알았다. 20대 전후에 술 마시러 가서 여자들이 몇 살이다고 하면 틀림없고, 확실치 않으면 내가 손을 만져보거든. 피부를 만져 보고 몇 살이라고 하면 틀림없었다. 미국에 있을 때 환자를 보고 몇 년 전에 정신분열병 발병했다고 하면 딱 정확하게 맞았다.
H 그 후 정신의학을 하게 되면서 어떻게 경험이 진행되었는지요?
R 정신의학 하기 전에 학교를 다닐 때 지금은 죽었지만 Kurt Kolle, 뮌헨 대학 교수의 독일 교과서에 Kleine Hypnose라고 일상생활에서 최면술에 대해 기술되어 있는데, 평소에 최면술 잘 거는 친구가 있어서 여자 잘 꼬시고 그걸 실제 하는 것을 내가 봤거든. 이 친구가 몇 달 전에 죽었지만 친구 하숙비 올라오면 알고 와서 노래 부르고 분위기 잡다가 최면 걸렸다 싶으면 '자! 가자'고 하면서 술집에 가게 된다. 그 친구 오면 돈 털린다는 것 알면서도 결국 최면에 걸리거든. 그래서 정신치료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는 정신과에서 별 치료방법도 없고 단지 Insulin 치료, 전기 치료 그리고 흥분하면 Scopolamine 주사 놓거나, 유황유를 끓여 주사를 놓아 아프게 하는 것 그런 것 밖에 없었다. 정신분석 책 읽어 봐도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고, 그게 인제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모두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현실을 추구하는 데 아무리 읽어도 현실이 안 나온다 말이야. 미국 정신분석 연구소에서도 Anxiety에 대해서 Report 내라고 하는데 내가 도저히 쓸 수 없어 안 썼다. 전부가 개념이라, 나는 현실을 추구하는데,
H 그러면 정신의학을 하면 그 어떤 정신치료적인 새로운 세계가 있다는 기대를 하시고 시작했습니까?
R 있었지, Kolle 책에도 정신치료가 있었지. 그때 정신분석이다, 최면술, 설득요법, 암시요법 등이 있었지. 나는 환자를 볼 적에 환자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때는 책에 있는 증상을 적고 진단 붙이고 전기 치료하고 이런 것, 별로 약도 없고, Bromide 제제 그런 것 밖에 없고, 별로 약도 없고 없던 그런 시대야, 그러니깐 혼자 환자 맘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지, 금방 이해가 안됐지. 그런데 당시 '정신분열병의 증상은 아무 의미가 없다' 이렇게 되어 있었다 말이야. 그런데 Binswanger의 현상학적 현존재분석이 대두되어 내적 의미를 찾으려고 했고 인간의 Innere Lebens Geshichte, inner life history를 강조하였다. 보통 정신과 의사는 환자의 외부에 나타나는 행동을 관찰 하는 거지. 마음속은 제외되어 있다 말이야. 그러니까 내적 생활사, 마음을 이해한다 그거지. 그런 노력을 하다가 해방 전후에 30대 여자가 머리가 아프다, 그래서 진찰 해보니 첫날밤에 남편이 임질을 옮겨서 그것 때문에 불임증이 되었다, 그래서 자녀를 보기 위해 남편에게 다른 여자를 집에 두고 함께 산지가 8년이 되었다고 했다. 첩과 함께 같은 집에 사니까 머리가 안 아플 턱이 없다고 내가 공감을 한 거야. 그래서 그 다음에 대구 피난 가서 심인성 두통 사례를 정신치료 했다. 그것이 최초로 (정신치료한 사례다). 대구 피난 갈 때 Franz Alexander와 French(Thomas Morton French)의 Psychoanalytic Therapy와 Psychoanalytic Theory of Neurosis, 그것 딱 두 권을 갖고 갔거든. 딴 것은 다 없어지고. 그 환자를 치료하기 전에 Alexander 책을 읽었지. 그 영향이 있을 거야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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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우도는 십우도(十牛圖), 목우도(牧牛圖)라고도 부르며 참선(參禪)에서의 각(覺)의 과정(過程)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림은 송광사의 십우도 벽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