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정신치료와 서양정신치료의 유사점과 차이점

1. 차이점은 단지 수준의 차이

이 선생은 그의 논문, “ 도, 정신분석 그리고 실존사상”에서 동양의 도와 정신분석 그리고 실존사상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설명했다. 그리고 동양의 도와 서양 정신치료/ 정신분석의 목표를 비교했는데, 그 목표는 같으나 단지 그 수준의 차이가 있을 따름이라고 결론 지었다. 또한 선생은 정신분석과 참선 수행의 과정을 비교하였는데, 어느 지점까지는 그 과정이 같다고 했다.



2. 전이와 핵심감정

도정신치료에 대해서 서양 정신분석가들이 가장 흔히 묻는 질문 가운데 한가지는, “정신분석에서는 환자의 전이 감정에 대한 이해와 해결이 가장 중요한데, 정신치료에서는 어떻게 치료하는가, 다시 말하면, 전이를 어떻게 다루는가?”라는 질문이다.

이 선생은 주장하기를, 도정신치료에서는 말 그대로 전이감정 중에도 핵이라고 할 수 있는 핵심감정을 공감하고 해결한다고 한다. 달리 말하면, 전이란 핵심감정을 전이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전이나 핵심감정은 둘 다 비슷한 방향으로 나아가지만, 도정신치료에서는 그 핵심되는 감정에 보다 확실하게 촛점을 둔다. 이것이 바로 도정신치료와 서양 정신치료의 공통점이자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3. 해석과 직지인심(直指人心)

서양 정신분석에서 ‘해석은 고통스런 내용에 대한 해석과 더불어 환자에게 공감하고 관심과 사랑을 제공하는것이다’라고 하며, ‘가장 이상적인 해석은, 환자의 의식 가까이에 와 있는 것을 자각하게 하는 것이 해석’이라는 견해, 즉, 환자가 거의자각하고 있지만 환자가 보고하지 않은 것을 해석해주는 것이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도정신치료에서도, 해석은 보고하지 않은 환자의 마음을 바로 지적해주는 것이고( 直指人心), 치료자가 주객일치 상태에서의 완벽한 공감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서로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강석헌(1996)은 그의 논문, “ 동서양 정신치료의 통합: 이동식의 경우”에서 이 선생의 정신치료에서 해석의 특징에 대해 몇 가지 설명하였다. 그는 기술하기를, 이 선생의 해석은 ‘殺活’이 있으며 환자를 ‘죽였다가 살리는 방법’이라고 했다.
Summers는 선생의 치료에 대해서 평하기를 ‘ 내담자에게 편안하게 안심시키면서 동시에 자극을 준다’고 했다. 殺活의 방법은 禪師들이 제자들의 망상이나 분별심을 끊어주기 위해 보통 사용되는 방식이라고 한다. 또 다른 이 선생의 해석의 특징을 지적하기를, 선생의 해석은 환자의 의존심과 적개심의 뿌리를 다루고 해결한다고 했다.



4. 중립성과 저항

프로이트는 실제로 ‘중립성’이라는 단어를 쓴 적이 없으나 Strachey가 독어 indifferenz 를 그렇게 번역했다. 사실, 프로이트는 다른 동료들이 치료자 자신의 문제를 역전이하거나, 치료자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데 분석상황을 잘못이용하는 경향에 대한 우려를 해서 이러한 개념을 사용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도정신치료와 정신분석은 비슷하다. 프로이트에게 분석 받은 사람들이나 그의 저서를 통해서 볼 때, 프로이트 자신의 인격이 분석과정에서 매우 깊숙이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듯이, 이 선생의 도정신치료에서도 치료자의 성숙한 인격의 적극적인 개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정신분석에서의 ‘저항’이란 개념에 대해서 이 선생은 주장하기를, 그 개념은 치료자의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지적하고, 치료자-중심 개념이라고 한다. 단지 환자의 주관적이고 내적인 경험만이 치료자가 고려해야 할 유일한 현실이라고 주장한다.



이론과 현실:동서양의 상이한 문화적 전통

플라톤의 대화의 ‘파이돈’에 소크라테스는 ‘죽음은 영혼과 육체의 분리’라고 했다. 육체는 감각,쾌락과 감정이고 이것은 착각을 일으키는 육체의 족쇄를 나타낸다. 진리(지혜,현실 등)에 이르려면 죽어야 한다. 죽음으로써 진리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에 기꺼이 죽는다. 그러나 그가 죽고 나서 플라톤 이후 서양의 전통은, 마음의 정화(catharsis)를 지적인 추구(이론 구성)로 하려고 했고, 반면에 동양에서는 도를 닦음으로써 마음을 정화하려고 노력해왔다. 여기서 동과 서가 완전히 갈라서게 된 것이다. 동양에서는 도를 닦는 전통으로 나아가고(현실 지향적), 서양에서는 개념적이고 이론적인 전통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이 점이 동서 전통의 근본적인 차이다. 불교에서 열반(Nirvana)은 육체가 살아 있으면서도 착각을 일으키는, 육체의 족쇄인 감정을 벗어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죽기 전에는 감정의 족쇄를 벗어날 수 없다고 믿었다.

Carl Rogers(1980)는 공감이 치유적이라고 했고 반면에 Heinz Kohut(Goldberg 1980)는 공감의 중요성을 영양적이고 치유적이라고 했다. 그러나 Kohut는 공감을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자료 수집과 이론 구성의 도구로 삼는 다는 오류를 범했다.

서양 문화에서는 새로운 말, 새로운 개념과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야 인정을 받는다. 인정을 받고자 하는 동기는 신경증적인 동기다. 서양인은 진리(현실, 실상)를 보는 순간 ‘개념의 감옥’으로 돌아가려고 한다(Barrett 1956).

이상 언급한 것이 서양 전통에 관한 이 선생의 견해다.
동양에서는 지적 추구가 오히려 현실, 진리에 도달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다. 말과 개념과 이론은 현실이 아니며,
현실(진리)에 도달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즉, 진리를 가르키는 손가락에 불과하다고 한다.

서양 정신분석에서는 신경증적인 불안은 제거할 수 있지만 정상적인 실존적인 불안은 제거할 수 없다고 하며, 실존철학에서는 정상적인 불안을 자각을 했으나 어떤 방법으로도 제거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동양의 도에 있어서는, 바로 이 실존적인 불안을 제거하는 것이 목표이고, 실존적인 불안은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유래되는데 불안 없이 죽음에 직면함으로써 이 실존적인 불안을 제거할 수 있다. 동양의 도에서는, 자신의 욕망을 제거함으로써 죽음을 두려움 없이 직면할 수 있다고 한다.

도정신치료는 동양의 도와 서양정신치료의 융합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그러한 경지에 이르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보다 높은 경지의 가능성을 자각하고, 거기에 이르도록 노력함으로써 우리는 치료자로서 보다 성숙해질 수 있다.



토론

정신 장애의 병리에 대해서 이 선생은, ‘정신 장애가 단지 기질적인 원인 때문만이라는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마음과 뇌/ 신체의 이분법적인 사고의 영향에 의한 시대에 뒤떨어진 견해라고 지적한다. 그는 EricKandel의 40년간의 연구 결과인 ‘뇌는 자신의 경험과 기억에 의해 형성된다’는 사실을 인용하면서 그러한 견해를 반박한다. 선생은, 동양의 도와, Franz Alexander가 말한 ‘교정적 정서경험’과 같은 것이 오늘날의 신경과학의 발달로 증명이 되어가고 있다고 한다.

도정신치료에서 우리가 동양의 도와 서양 정신치료를 비교하고, 또한 동서 문화적 차이를 설명하는 목적은, 어느 한쪽의 문화적 전통이 다른 한 쪽보다 더 우월하다는 사실을 주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동식 선생은 동양인가 서양인가에 관계없이 진리라면 어떤 것이든지 수용하려는 것이 그의 기본적 태도다. 그의 신조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신조인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Nil Admirari). 더욱이그는, 도정신치료를 자신이 만들었다고 하지 않는다. 논어에 ‘단지 기술할 뿐이지 새로운 것을 만들지 않는다’( 述而不作)라고 했듯이(논어, 제 7 述而) 선생은 단지 눈앞에 보이는 현실을 목격해서 그대로 기술하고 전달할 뿐이라고 한다.



요약

요약하면, 도정신치료는 매순간 환자의 마음과 행동을 지배하여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배하는 핵심감정을 치료자의 감정으로 공감하여 치료하는 것이다. 환자의 핵심감정을 잘 공감하기 위해서는 치료자가 자비심이 있어야 한다. 치료자가정심을 통하여 자신의 핵심감정을 해결해야만 자비심이 길러진다.

동양의 도와 서양정신치료의 목표는 같지만 단지, 수준의 차이가 있을 따름이다. 달리 말해서,서양 정신분석과 참선 수행의 과정을 보면 어느 시점까지는 양쪽이 같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상의 도정신치료의 원리는 신경증이나 정신병 등 모든 정신장애에서 똑같이 적용된다. 또한 도정신치료의 철학적배경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지각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동양의 전통 사상의 기본이다. 인간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뇌(몸)와 마음을 분리하지 않고 하나의 통일체로서의 개체로 이해하는 것도 ‘현실’이라는 측면에서 그 맥을 같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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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우도는 십우도(十牛圖), 목우도(牧牛圖)라고도 부르며 참선(參禪)에서의 각(覺)의 과정(過程)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림은 송광사의 십우도 벽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