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암이동식선생 회갑기념논문집 ‘도와 인간과학’ pp. 493-502에 실려 있으며, 2004년 8월 이동식선생님께서교정을 보신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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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12월 아카데미 하우스에서 이동식선생(李東植先生)과의 대화(對話)가 많은 회원들과의 사이에 있었고 81 년 6 월에 선생(先生)님의 새집에서 몇몇 후배들과의 사이에 2차 대화가 있었다. 글로 옮겨 싣기에 어려움이 있어서 1, 2차 모임에서 있었던 대화의 줄거리를 정리하여, 81년 7월초에 편집자가 단독 인터뷰를 하여 대강을 정리하고져 시도하였다. 이하(以下)는 그 대화 내용이다 (대담자 및 문책 : 문홍세(文洪世)) |
文 |
선생님과의 만남은 저 개인으로 말하더라도 약 20 년이 되었습니다. 늘 대하고 있으면서도 李선생님은 누구인가를 잘 모릅니다. “나를 이해하는 사람은 상당한 수준에 있다”고도 하셨고 그런 의미에서 고독하지 않나하는 강석헌 선생의 해석도 있습니다. 방화자(放火者), 불사조(不死鳥), 치료자(治療者), 복덕방, 고목나무 등등 보는 사람에 따라 긍(肯)·부정(否定)의 감정을 보이고 있습니다. 맨 먼저 선생님의 어린시절(時節)과 성장과정(成長過程)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
李 |
아 영향 받은 사람들 얘기. 음 … . 증조부는 본적이 없는데 인천(仁川)서 무역을 했다고 고모에게 들었고, 장손(長孫)이 되어서 우선 부모(父母)의 영향이 크고 증조모, 조부모, 삼촌, 고모 영향을, 증조모가 무식해도「이리야마」라는 왜놈 중추원참의가 있었는데 “얘끼 이놈” 해서 그가 겁나서 도망했고, 조부는 30대(代)에 시베리아에도 다니시고, 뱃장은 증조모하고 할아버지로부터 받았지. 조부가 전설적인 인물이라, ×××가 자기 아버지로부터 들었다고 전해준 얘기인데, 노름을 좋아하셨는데 하루 저녁에 400원을 잃었다나, 집 한 채 값이라는데, 이튿날 새벽에 똥장구니를 지고 밭에 나가더라고. 거금 잃고 새벽부터 그럴 기분이 나느냐 하니까, “일을 해서 벌어야지, 또 노름할 수 있지 않나!” 하던 유명한 얘기. 6.25 때도 70 노인네가 비판적 얘기해서 한 때 유치장에 갇히었다고. 늙어도 노동해야 한다 하시고. 공무원도 반대, 상인은 거짓말한다고, 땅 파먹는 사람은 남을 해치지 않는다고, 관청이 있으면 자연 수탈한다고, 우리 집 애들도 판검사 공무원에게 시집 안 가려한다. |
文 |
스케일이 크실 뿐 아니라 공짜 안 먹는다. 성실하게 일하신다. 이런게-. |
李 |
그렇지 하루종일 일하셨지 방학 때 농장에 가면 늘, 일, 원두막에서 낮잠 자고나면 수박 주시고, 작은 농장-. |
文 |
부친께서는-. |
李 |
할아버지나 나보다 약하지, 북해도제대 농학부. 응, 그래도 내가 국민학교 때 방학 때 집에 오셨을 때 …해서 고등계형사 뺨을 탁 때리는 그런 정도의 것은 있었어. |
文 |
자당께서도 한국적인-. |
李 |
그렇지 별 트러블이 없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 아카데미에서도 말했지만 여동생이 잘 따르고 좋은 여성상(女性像)을 줬지. 형(兄)은 낳자 곧 돌아가셨고 나는 늘 장손(長孫)이라서 늘 영향이 있지. ×××도 선생님은 늘 남의 걱정을 하신다고 말했지만 늘 동생들, 집안 돌보려는-. 부친이 별로 안하니까 그게 관계 있을거야. 할아버지고 뭐고 틀렸다하면 내가 “쾅” 때리고 내가 가정 내에서 말하자면 바른 소리해서 꺾이지 않았다. |
文 |
동생은 몇 분 되십니까? |
李 |
남동생이 2 , 여동생이 1 , 나는 장손, 장남이라, 삼촌(三寸), 고모(姑母)의 사랑 많이 받았고, 선배가 있어서 학교에 데려가고 학교에서도 사랑을 많이-. |
文 |
좌절, 저항을 만나신 것은? |
李 |
서울대에 와서-. |
文 |
frustration은? |
李 |
frustration은 서모(庶母)하고, 위장병이 생겨. 하여튼 그래도 나하고 싶은 대로 다 한다고-. |
文 |
부친과의 연세가 17세(歲)라고 하셨는데. |
李 |
16세, 그것이, 아카데미하우스에서도 말했지만 initial memory. 부친이 겸연쩍어하시니까 어린애 마음으로는 rejection으로-. |
文 |
쭈-욱 고향에-. |
李 |
왜관, 아버지가 청주농업학교 교유로 가셔서 나는 기차통학도 하고 6개월 하숙도, 청주고보에 갔지. 서모, 그 때 위장병이 생겼다. 동생들을 보호할 입장(立場), 내가 개업(開業)해야 할 갈등 생긴 것이지, 동생들이 불만(不滿)도 있을 수 있는 것이지. |
文 |
공부(工夫)하시는게 어땠습니까? |
李 |
국 1년 때 성적 좋다가 3학년에 떨어져-. 근시(近視)인데 5학년 말에 발견, 안경 끼니까 별천지 같아. 성적 오르고 그 때 과외공부도 좀, 6학년에 2등 했지. 대구고보는 나 하나밖에 입학 못했어. 연령이 부족해서-. 「배용광」과 나만 합격, 우리가 마지막 고보(高普). 자발적(自發的) 공부(工夫)는 청주고보(淸州高普) 와서. 그 전엔 소설(小說)이나 보고 할아버지는 공부 너무하지 말라. 3학년 때 청주고보 가보니 생물(生物)이 대구고보(大邱高普)에서 20등인가 40등, 한 학기 2번 정기시험. 낙제생 애들도 쉬는 시간에 책(冊)들 봐서 놀 놈이 없어. 나도 책(冊) 좀 보니 첫 학기에 10 몇 등 하데. 영어는 시험을 수시로 쳐서 부독본견본 온 것을 상으로 주고, 4학년에 「우에끼」가, 다른 선생(先生) 6名 있었는데 시원치 않았고, 「우에끼」는 「히로시마」영어교원양성소 나와서 검정시험 쳐서 고등교원 패스했는데, 질문해서 모르면 모른다 했다. 위에 숙어, 밑에 대학(大學) 전문학교시험 문제 있고 두서너 줄을 2~3 시간 예습을, 음, 한 학기 하니 더할게 없어. 문법(文法)이 제절로 머리 속에 떠올라와 4학년 말에 5학년과 모의시험 같이 하는데, 5학년이 못 따라와. 졸업까지 항상 모의시험에 1등 했지. 나와 내 밑의 점수차가 10점차(點差), 성대에 들어온 놈도 60여점, 이××도 20점차(點差). 대구의전 시험 치는데 시험장에서도 다 감탄하더라고. 나도「수험(受驗)과 학생(學生)」시험 치는데, 모르는 학생이 저 사람이 Concise 외는 이동식이라고 하하. |
文 |
어떤 정신이 그렇게 두 줄을 부뜰고-. |
李 |
아니, 철저하게 알 때까지, 모르는 것은「우에끼」에게 추구, 다른 선생(先生)은 나보다 못해. 다른 학생이 싫어하더라고, 영어시간은 내시간이나 마찬가지. |
文 |
선생을 잘 만나셨군요. |
李 |
그렇지「우에끼」와 「하세가와」가 둘 다 후에 경기중학(中學)의 선생으로 갔지, 그래서 대구의전(大邱醫專) 때 언어학(言語學) 하려고도 했지. |
文 |
기본(基本)이, 철저함이-. |
李 |
모든 공부(工夫)가 영어공부(英語工夫)하는 식(式)으로. |
文 |
옛날 사람들 공부방식(工夫方式)이 다-. |
李 |
그렇지 대학독법(大學讀法)에 보면 글을 완전(完全)히 안 다음에 다음으로 넘어가라, 딱- 그렇게 되어있지. 어느 정도하면 할 게 없지. 나머지는 반복(反復)하는 것뿐이다. 모씨는 연대(延大) 나와 지금 서울대 교수(敎授)-. 그가 London 대학(大學)에 그가 경제학공부(經濟學工夫) 안했거든, 기본책(基本冊) 3권(卷) 을 10회(回) 읽고 시험(試驗) 봤더니 영국교수(英國敎授)가 영국학생(英國學生)보다 우수(優秀)하다고 자꾸 밀어서 U.N.국제기구 Consultant로-. |
文 |
늘 철저하시고, 다지시고, 확인하시고, 또 지적하시고, 재확인하시는데 정신치료도-. 본래적(本來的)인, 기본적(基本的)인 성격이 있으셨겠는데-. |
李 |
5, 6세(歲) 때 보니, 싸우고 울고 하는 것 보니 감정처리 잘 못해서 인간(人間)에 불행(不幸)이 온다. 이웃집 친구 어머니가 동식이는 중 같다, 인생을 환히 알고 있다-. 의 연장이다. |
文 |
자당께서 덜 간섭해서 독자적인 생각을 하시게 된 게 아닌가요. |
李 |
그렇지 할아버지도 간섭 없고 ‘democratic,' 독립(獨立)을 강조(强調)하셨지. |
文 |
쓸데없는 infection을 덜 받으셔서 독자적인-. |
李 |
그렇지, 뭐 서모(庶母) 문제(問題) 하고 사회(社會) 나와서 성대에 오니, 전문학교는 취급안하거든, 차별(差別) 받은 것, 내가 영어(英語) 잘 하니까 괜찮았으나 공식적인 실질적(實質的)인 차별(差別)-. |
文 |
정신과를 하시게 된 게-. |
李 |
대구의전 다닐 때 언어학(言語學) 하려고, 3, 4회 퇴학(退學)하려고, 결석(缺席)도 했지. 일제하(日帝下) 대동아전쟁하(大東亞戰爭下)에 의사 변호사가 보리밥은 먹으니까 내 하고 싶은 데로 한다-. 3학년 때 정신과는 인문사회(人文社會) 모든 것을 공부해야 하니까 정신과를 택했지. 일본(日本) 가서 정신의학 하려고 했는데, 어떤 수준(水準)에서는 성대는 대학으로 안쳤거든. 학교 다닐 때 배석장교(교련 교관) 애먹이고, 교장이 학적부 보고, 입학(入學) 때 수학실패(數學失敗) 했는데 우리 동기(同期)가 일제하(日帝下)에 일본(日本) 갈 수 있는 사람들이 장남(長男)이다, 뭐다해서 많이 한국에 있는 학교에 입학 했거든. 입학성적은 2등인데 졸업성적(卒業成績)은 꼴찌라, 교장이 추천 못한다 해서 임시로 안과(眼科)에 갔지, 도서실에서 정신과책(冊), Bumke의 책(冊)을 보고 있으려니 일본 구대(九大) 정신과 다녀온 내과에 있는 일인(日人) 선배가 정신과 하려느냐, 성대 정신과에 구경이나 하라 해서 구경하러 와보니, 왜놈 조수들이 소집당해서 교수만 빼고 한국 사람만 남았거든. 임문빈이가 조교수 만나라 해서 만났더니, 교수 만나라, 교수 만났더니 연구비는 못대도 생활은 보장한다 해서 정신과에-. |
文 |
학생 때도 인문사회(人文社會)에 관심이-. |
李 |
그렇지 칸트, 쇼펜하워, 니체를 독일어 원서(原書)로. |
文 |
학생 때부터 Kolle 책(冊)을-. |
李 |
그렇지 학생 때 책 사러 「후꾸오까」에, 3학년 초였지, Kolle 뿐 아니라 여러 가지. 관부연락선 타는데 고등계형사가, 내가 왜놈처럼 생겨서 그냥 패스해서 탔지. |
文 |
성대(城大) 오시기 전에 정신과를-. |
李 |
정신과 성적은 Kolle 책(冊) 가지고 하니 최고였지. 의사를 한다, 전에도 얘기했지만 정치가, 언론인, 교육자 中 교육자가 내 성격에 적합해서 보통은 의사가 교육자가 된다를 의아하게 생각하겠지만 그게 아니라 직업에 얽매이는 것이 아닌, 고걸 알아야되, 집착이 없었다는 것을 알겠지, 평생교육자(平生敎育者), 정신치료 뭐-. |
文 |
혹시 철학(哲學)을 하시겠다는 생각은 없으셨는지-. |
李 |
철학(哲學)을 하려면 생물학(生物學)을 알아야 해, 생물학적(生物學的) 인간학(人間學), 의사를 한게 유리했다. 철학적(哲學的) 인간학(人間學)이라는게 전부(全部) 인간생물학(人間生物學)을 토대(土臺)로 하고 있으니-. |
文 |
형이상학(形而上學)이라는게 골치가 아픈데, reality로부터 detach되는 게, 생물학적(生物學的) base에서라면-. |
李 |
아니 어떤 직업이나 학문분야(學問分野)에 처음부터 매어달리지 않는다. 의사한다 하면서 교육자 좀 이상하지 응. |
文 |
가계(家系)가 순수(純粹)한 편(便), professional 한게 덜. |
李 |
아 출세(出世)라는게 우리 집에서는 안 좋은 것으로, 돈이다 명예다, 권력이다 하는 것을 안 좋은 것으로. |
文 |
그게 좀 보통과는 다른-. window 밖에서 보면 욕심이 많으시다고 하는데. |
李 |
「×××」이도 그래, 밤낮 비실리적(非實理的)이라고 했다가 또 어떤 때는 철저한 현실적이라고, 나는 integrate 되어 있는데 자기입장에서 볼 때 그렇지. |
文 |
정신분석을 하시게 된게-. |
李 |
대구의전(大邱醫專) 때 괴물 많았다. 입명관(立命館) 다니던 친구, 과부, 여자 잘 꼬시고 하던 金○○ -. 술 먹고 싶으면 괜히 와 가지고 무드 조성해가, 어느 정도 됐다 싶으면 자-가자카믄, 나는 저놈이 오면 내 돈을 뺏어 간다는 것 알면서도 끌려가게 되더라고. Kolle 책(冊) 에서 보면 “일상생활(日常生活) 에서의 Hypnose” 음, 일상생활(日常生活)에서 그것 관찰했다고, 그 때부터 정신치료하게 됐다고. |
文 |
서울대에서의 생활을 좀. |
李 |
그 얘기 다하려면 수일(數日) 걸린다. 자기흥미로 얘기 끌고 가면 수일(數日) 걸린다. 최지철, 임문빈, 최재혁 등 영(英), 독(獨) 모르면 李선생에게 가라. 6개월 되니까 최지철이가 선생님 왜 정신치료(精神治療) 실천(實踐) 안하시느냐고-. |
文 |
주체성(主體性)이 강하신데 계기가 있는게 아니라 본래적(本來的)으로-. |
李 |
일본(日本)간호원 쫓겨난 얘기 알지. 한국인 환자를 병실관계로 일본인(日本人) 환자와 같이 있으라 했는데, 안되었드라고. 왜 그러냐 했더니 간호부장이 환자가 「여보」와 같이 안있겠다고, 응. 다른 한국의사들이 다들 말 못하는데 내가 “사석(私席)에서「여보」「센징」「슈후」하는 것 얼마든지 좋으나 직장(職場)에서는 용납 못한다” 했더니, 「아마노」가 확하고, 「와다나베」교수가 그 간호원을 청진(淸津)으로 보내버렸지. |
文 |
권위에 굴복한 적 없다-. |
李 |
그렇지, 5.16 때 감찰위원회 정보부 비위 적발해서 계엄령 하에서, 재판부에서 판결을 7 회 연기, 내 죄(罪)가 없고 저쪽에 죄(罪)가 있으니까, 물적 증거 있으니까, 억지로 징역 6개월(個月)-. |
文 |
가장 dramatic한-. 외국유학생활(外國留學生活)에 대해서-. |
李 |
미국 갈 적에는-. 고순덕이 미국 갔다 오는게 좋다고 한 바 있고-. 훌브라이트 장학금, 시험성적이 이××, 서×× 보다 났었다. 1/4 은 착각(錯覺)해서 40점이고 다른 세 가지는 94點 96點 평균이 85점, 정신과는 안 보낸다 해서. 그 후 후배 소아과 교수가 미국 정신과 군의관이 한국 정신과의사 만나고 싶다고 해서 만나 얘기했는데, 그가 왜 한국정부가 당신 같은 유능한 정신과의사를 놀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자기 부모도 소련서 있다 하고 미국 가라. 나는 어떻게 가나 했더니, 그가 아무데나 편지 내라, 내면 된다 해서, 모르니까 6개월 주저하다가 편지 내니 사방(四方)에서 오라. 정신분석 하러 가겠다고 생각, 그러면 연구소 있는 대도시에 가야 된다, N.Y, Chicago, Boston 등. N.Y. 벨뷰에 갔지. 알아보니 코스는 Clara Thompson이 무료(無料)로 해준다. General Student로, Low Cost Psychoanalytic Clinic에apply하라, 그리했더니 1年만에, 25$인데 7$로, 그 때 analyst가 필적 감정시켜 보고 심리검사하고, defense가 없다 하고 patient! 두 가지, 응, 6개월하고 그다음은 내가 한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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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
처음은 다 Freudian 또는 -, 로 시작하는데-. |
李 |
절대 신봉 안한다, 현재까지도. 누구에게나 매달리지 않는다. 알겠어. |
文 |
서양정신치료(西洋精神治療)의 한계점(限界點), 문제점(問題點)은-. |
李 |
특히 도(道)에 대해서는 그 전부터 동양(東洋)을 무시(無視)해 싸서,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다. 음, 나는 일어(日語), 영어(英語), 독어(獨語) 했고 한국책(韓國冊) 못 읽었단 말이야. 정신(精神)은 안그랬고, 돌아와서 동양(東洋)에 다 여러 가지 안있겠나. 이런 정도로 시작해 보니 오히려 더 궁극적인 정신치료가 도(道)다 라는 결론에 도달(到達), 서양(西洋)사람도 요사이 그렇게 되어가고 있지, Laing이라든지. 서양정신치료자(西洋精神治療者)는 자기집착(自己執着)을 못 벗어나고 있다. Medard Boss도 그렇고, 다- 자기집착(自己執着) 벗어나느냐, 아니냐 그러한 차(差)다. M. Boss도 최고의 Western psychoanalytic training도 동양(東洋)의 Purification of mind 의 입장(立場)에서 보면 introduction에 불과(不過)하다고 한 것, 그런 차(差)다. |
文 |
서양(西洋)사람은 역사적(歷史的)으로 문화적(文化的)으로-. |
李 |
Boss와 interview 하는 것 들었지. 서양문화(西洋文化)에서는 그렇게 밖에는 도저히 안된다. 전자공업(電子工業)에서도 그렇게 되어가지만 culture를 바꾸기 전(前)에는 일본(日本)에 따라갈 수 없다. 답(答)이 되나. 핵심(核心)은 집착(執着) 버리는 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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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
concept, 이론(理論) -. |
李 |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서도 보살과 성숙된 치료자(治療者)의 기술(記述)이 일치(一致)되고 있음을, Saul의 mature analyst의 기술과 기신론의 보살과 똑같다 이거야. Dewald 도 보살소리 나온다. 그는 보살이 뭔지 모르나 내용적으로는 보살 같은 소리를 한다. |
文 |
많이들 Freud, Jung을 버리면 catastrophic 하게 되지 않나 하는 질문이 있는 것 같은데, 그런 것 버리면 옷을 벗긴 것 같은. 집착을 버리라 하면 아무것도 없다는 feeling, 뭘로 또 대치(代置)하나, 하게 되지 않나. 하하 |
李 |
대치(代置)해도 마찬가지. 마하무드라의 노래에 나온다고. 자기 속에서의 것만이 진실(眞實)이다 라고, 남의 얘기나 듣고- 속에서 올라오는 소리 들으면, Freud든지 Jung이든지 응, 그들 말을 듣고 내 반응을 소화하면 완전(完全)히 자기 것이 된다. 내 반응을 소화 안하면 Jung은 Jung, 나는 나로 분리(分離)된다. 진리(眞理)라는 것은 누가 말해도 같다. 개인(個人)의 소유물이 아니고 깨달은 사람은 마찬가지다. 동일(同一)한, 말하자면 연애하는 사람 감정이 같은 것과 마찬가지야, 자기(自己) 속의 것에서 소화하는 것만이 진실(眞實)이다. Freud가 어떤 의미로 그렇게 했나를 파악해야지. |
文 |
아상(我相) 때문에 붙잡는 것이 아닌가 하는데요-. 누가 하는 정신치료냐 하는 문제도. |
李 |
아 Strupp도-, 그게 문제지. 금강경(金剛經) 했지 않나. 야부송(冶父頌)에 정인(正人)이 설(說) 사법(邪法)하면 실귀(悉歸) 정법(正法)이요, 사인(邪人)이 설(說) 정법(正法)하면 실귀(悉歸) 사법(邪法)이다. 어릴 적에도 지식(知識)이고 기술(技術)이고 뭐고, 사람이 바로 되어야 한다는게 들었다. |
文 |
수준(水準) 차(差)도 문제(問題)가 되지 않나요. |
李 |
미숙한 것은 덜 다룬 것이지. |
文 |
교육하시다보면 부담도 많으시고 귀찮거나 힘이 들거나 하실 텐데. |
李 |
그러니까 patient-, 하하. 수십 년 유치원생만 가르치고 있다고. 요새 조금 모두 level이 약간 올라가고 있는 것이지. 조금 배워놓으면 써먹느라고 더 안배우고. 옛날에, 교수들 얘기 들어보면 동양(東洋)사람들이 비법(秘法)을 전수(傳受)안한다고 엉뚱한 소리하는데, 보면 배우려는 사람이 없다고. 도중(途中)에 써먹느라고 탈락(脫落), 그런 높은 경지(境地)까지는 배우려고 안 해. 김(金) 탄허(呑虛)도 음악 아는 친구 하나 있었는데 그가 죽자 악기(樂器)를 부쉈다고, 지음(知音)이라 해. 모두 적당히 하고 그만두고 안배우려고 해. 안 가르키려고 하는게 아니야, 마하무드라의 노래 지은 사람도 티벳에 가서 겨우 한사람 만나서 가르켰다고-. |
文 |
퇴계선생님 말씀도 성(誠), 경(敬), 격물치지(格物致知),-. |
李 |
거경, 성실한 마음가짐. 도(道)가 별게 아니고 성실성(誠實性)이 도(道), 자연(自然)스러움, 거만하지 않는 것이지. 옛이나 지금이나 정법(正法)은 드물고 사법(邪法)이 횡행해. 교수(敎授)들이 자기도 모르는 엉뚱한 소리나 해서 혼란(混亂)을 일으켜- |
文 |
선생님이 하신대로 배우고, 익히고, 따라가고. |
李 |
그게 자기 속에 다 있다. 자기 속의 것을 개발해야. |
文 |
그렇게 성실하게 해야 앞으로 한국정신과는 법통(法統)이랄까 정신(精神)을 이어간다고 생각(生覺)하는데, 후학(后學)들이 근기(根機)가 약(弱)해서 하다말고. |
李 |
그전보다 많이 좋아졌으나 한10 년 더해서 그렇게 되어야지. 그전에 내 제자들도 도(道)카문 다 웃어쌓고 아무도 상대 안했지. |
文 |
15년씩이나 continuity 가지고 불경(佛經)공부 하시는 것, window 밖에서 보는 사람은 고집이 쎄다고도-. |
李 |
고집은 무슨 고집, 원리원칙(原理原則)에 대(對)해서는 그렇지. 나를 반대하는 사람도 속으로는 느끼지. 내가 이렇게 하려는 것은 아니라 하는 것을. |
文 |
60 평생(平生) 죽 하신게 처음부터 지금까지 일관(一貫)하시었지요. |
李 |
어릴 적에 인간(人間)의 불행(不幸)은 감정에 있다. 응, 그것을 잘하면 행복하다. 그래서 정신치료하고, 교육하고, 지도하고. 서모는 내가 자기 하고 싶은 데로 다 한다고, 둘째 딸은 아버지는 쓸데없는 것은 하나도 안한다고-. |
文 |
김선생님도 그러시던데-. |
李 |
그렇다고 남 희생하면서 하는 것은 아니지-. 주체성이라는 것은 사상(思想)이 아니라, 자기를 찾으면 그게 바로 주체성. 도(道) 입장(立場)에서 보면 사상(思想)이라는 것은 망상(妄想)이다. 모든 사람이 깨달으면 다 동일(同一)한 것이다. 연애하는 사람의 감정이나 말이 똑같은 것과 마찬가지. 주체성(主體性) 찾는 사람의 말은 동서고금(東西古今) 똑같은 것이다. 사상(思想)이 아니다. 개인(個人)이나 집단의 소유물이 아니다. |
文 |
도(道)는 이동식(李東植)의 것이라고 잘못 오해도-. |
李 |
내 개인(個人)의 것이 아니고 누구든지 자기를 찾으면 꼭 같다. 선사상(禪思想)이라는 것 사상(思想)이 아니다. 내 글 읽고 표절한다 뭐 그런 소리 나에게 와서-, 가만히 보니 내 글 읽으면 깨닫는다. 그러니 이동식(李東植)의 뭐가 아니고 바로 자기 글이니까, 인용(引用)하기도 우습지 않나. |
文 |
전(前)에 말씀하신 것인데 선생님 말씀 들은 사람이 후에 李선생님을 거꾸로 설득하려고 하였다는-. |
李 |
종종, ×××하시는 ×××에게 얘기 해줬더니 그걸 가지고 나중에 나를 설득하려고, 자기 것이 되어버리니까 거꾸로-. |
文 |
도(道)는 만인(萬人)의 공유물(共有物)이다. 앞으로 하실 일 늘 같으시겠죠. |
李 |
무진장, 동기생은 다 은퇴한다 뭐, 음. 나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하하. |
文 |
전(前)에 실망이 크셨을 때는 다 고만두고 책(冊)이나 쓰시겠다고도-. |
李 |
10 몇 년 전에 ×××에게-. 보니 후배들이 빨리 안한다-. 나 자신을 보니 그게 내 dependancy라, 상대방 근기가 그런데 말야. 오히려 태도를 바꾸었더니 결과가 좋더라 이거야. 부모(父母)가 왜 공부(工夫) 안하느냐, 뭐 온갖 정신병 만드는 것이나 마찬가지, 각자가 근기(根機)대로, 지금도 각자 정도대로 받아들이는 것이지, 그걸 다 하려면 안돼. 여러 가지 정도가 있다고, 빨리 안 한다고 하면 다 쫓아내야 하는 것이지. |
文 |
아드님도 선생님만큼 되려면-. |
李 |
자네들이 잘 가르켜야지. 밤낮 아버지가 뭐 어쩐다 해 쌓더니 한 30년 해야 한다고-. 전에 학교(學校) 다닐 때는 내 글 같은 것은 누구나 쓸 수 있다고 하다가, 사회에 나가보니 아무나 쓰는 글이 아닌 것 알았다고, 집에서는 자기 아버지로만, need satisfaction으로만 봐서-. |
文 |
식구들이 다 순수한 것 같다. |
李 |
큰딸도 공부(工夫), 판사도 싫다고 둘째도 자기 힘으로 외국 갔고, 셋째, 넷째도. |
文 |
순수, 김선생님도 순수, 제자들도 보면 순수하게 가정을 이끌어 가는 것 같다. |
李 |
×××는 이선생이 하라는 대로 하면 틀림없다고 그렇게 한다. |
文 |
한국 정신치료 장래에 대해서-. |
李 |
작년에 마닐라, 아세안 각국에서 Initial Congress든지 Workshop이든지 하라고. 대만이든지 전부 한국에서 해 달라. 김용식 대사나 이또쭈 회장이 국제 감각을 가지라-. 세계(世界)에서 한국의 위치가 지금 대통령이 아세안 각국 도는 것이나 같다. Japanese는 싫다 이거야. 정부보다 정신과의사가 뒤지고 있다. 한국이 lead 해야지, 국제 감각 가져야지. 영어회화(英語會話) 공부(工夫)해야지, ×××는 여럿 있는데서 영어공부(英語工夫)해야 한다 얘기했더니, 탁 받아서 개인교수도 받고, 모든게 진행중(進行中)이야. 文선생은 어떻게 받나. |
文 |
내 같은게 뭘 하나 식이지요. |
李 |
한국(韓國) 사람이 몰라. Japanese는 economic animal, sex animal, 식인종(食人種), animal이다. 한국(韓國)은 animal 이라는게 없거든. 각국(各國) 사람이 한국에 와서 인간(人間)을 발견(發見)한다고 되어있거든. 한국 사람이 한국(韓國)전통과 기본 personality에 대한 자각(自覺)이 없거든. 쓸데없는, 외국의 나쁜 것을 수입해서 기본 personality를 deteriorate 시키고 있거든. 할 일이 많다. 10 년 전에 안××교수에게「한국의 선비」에 대해서 쓰라했는데, 쓴다 했는데 쓰는지 모르지. |
文 |
미국의 한국정신과 의사와 joint 해서-. |
李 |
그전부터 밤낮 얘기, 미국의 한국의사와 합작(合作)으로 병원 만들어서 환자보고 연구하고 또 재미교포의 정신치료를 또 해야 한다. workshop을 organize해서 해봐라. 崔××는 10년간(年間) 미국 환자만 보다가 한국 환자 보니, 한국정신의학을 안 했거든, 한국정신의학을 알기위해서 왔다 이거야. 한국정신의학을 하자는게 처음 듣는 소리다. |
文 |
선생님 말씀은 언제 어느 때나 수십 년 해 오셔서 후학들이 대강 알아듣고 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번 인터뷰도 그런 속에서 하나의 연속선상의 점(點)이라고 여겨집니다. 계속 지도해 주실 것이기에 뒤로 또 밀고 오늘은 이 정도로 마치겠습니다. 꼬냑 잘 들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