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과 민주주의 : 월간 불광 제154호 / 198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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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댓글 0건 조회 550회 작성일 23-09-19 13:53본문
[월간 불광 제154호 / 1987-08]
현대인의 정신위생
한국인과 민주주의
이 동 식
민족노이로제
6.25 때인가, 그 얼마 후였던가, 한국의 정치상황을 이야기할 때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한다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꽃피는 것과 같이 불가능하다.」는 어느 외국인의 말이 오늘날까지 번번이 인용되어 왔다.
5. 16 후에는 선의의 독재가 필요하다. 그래서 세조가 조카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것은 잘한 일이다고 어떤 국사학자가 말한 적이 있었다.
나는 일제시대부터, 광복 후에도 그리고 지금도, 일제 식민지시대에 일제의 교육을 받고 길들여진 많은 대다수의 기성세대, 특히 50세 이상의 세대에 있어서는 지금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한국의 역사 ․ 전통 ․ 한국인의 성격을 좋지 않게 생각하는 엽전(葉錢)사상에 기인한다 하겠다.
나는 정신과의사가 되어 다년간 노이로제나 정신병환자들을 치료하는 동안, 이렇듯 자기를 비하(卑下)하고 말살하고 저주하고 열등시하며, 원수를 찬양하고 닮으려고 하는 것이 「정신불건강」이고, 자기를 받아들이고 사랑하고 존중하는 것이 「정신건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석가모니가 외쳤다는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 바로 최고의 정신건강이고 우리나라 사람들의 자기를 비웃는 버릇이 바로 노이로제 환자의 심리와 꼭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것을 한국인의 민족노이로제라고 이름을 붙이고 있다.
이렇게 수십 년 동안 우리 주변에서 우리들 자신을 말살하는 말을 듣고 있다가 선의의 독재가 필요하다는 논리를 하는 지식인이 나오기까지 해서, 23년 전에 모월간지에 「내부독재와 패배의식」이라는 글을 기고하여 독재의 심리를 밝혀서 크게 반향을 일으킨 일이 있다.
내부독재가 노이로제고, 마음속의 민주주의가 정신건강이며, 독재를 하는 사람이나 독재를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나 다같이 패배의식이 밑바닥에 깔려 있다는 것을 지적했었다. 그리고 15년 전에 「한국인의 재발견」이라는 토론회를 10 개월 동안 한 달에 한 번씩 1박 2일로 부문별 모임을 가졌는데, 나와 모교수는 매월 나오기를 요청받아 매번 참석한 일이 있었다. 이때에도 우리나라의 각 분야의 최고 지성인들이 우리 문화나 사람들을 비하시키는 민족노이로제의 증상을 보이면서, 한국에는 민주 전통이 없다고 정치학 교수들이 떠들고 있었다.
그 사람들이 서양에 가서 배워 온 정치학을 말하는 것을 잘 들어보면, 민주주의를 이야기 하나 실은 동양의 왕도(王道)정치를 말하고 있다.
서양의 민주주의는 패도(覇道)정치고, 서양에는 플라톤의 철인정치라는 말은 있어도 왕도정치는 없는데도 서양의 민주주의를 말하면서 무의식중에 머리 속에서는 지도자를 성인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케 했다.
몇 달 묵은 잡지를 보니 한국교수와 미국의 정치학교수의 민주주의에 대한 좌담이 실려 있었다. 어떤 한 미국교수가 서양의 민주주의를 말하는데, 서양의 민주주의는 정치가를 다 도둑놈으로 보고 도둑놈끼리 서로 감시하고 견제를 시켜, 될 수 있으면 도둑질을 적게 하자는 것이 삼권분립의 서양식 민주주의다는 것을 이야기하였다.
나라를 고치는 의사
광주 사태직전에는 양 김씨가 자기들 세상이 온 것으로 알고 서로 대통령이 되려고 다투어, 심상치 않는 공기가 보일 조짐이 있어서 독재의 심리에 대해 모월간지에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때에는 가까운 역사를 보라, 어른이 필요하다는 것을 지적했었다.
4년 전에 미국에 갔을 때에 내가 명예회장으로 있는 모임의 회원의 반 이상이 호남출신이고, 나머지 회원은 경상도, 황해도인데, 호남출신의 두 정신과 의사가 당시 신병 치료차 미국에 머물고 있는 한 김씨를 찬양하면서 나에게 동의를 구했다. 그분들이 김씨를 존경하고 나도 존경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어 솔직하게 말했다. 김씨는 민족의 죄인이다고 했더니, 놀라면서 왜 죄인이냐고 물었다. 박씨가 살해된 후에 김씨 세력이 제일 우세하다고 했는데, 우리나라가 환자라면 김씨는 우리나라를 구하는 의사다. 환자를 치료하는 데에는 순서를 밟아야 한다. 김씨가 해야 할 일은 또 하나의 김씨와 힘을 합쳐서 전 국민의 호응을 얻고, 이 땅에서 영원히 독재를 추방하기 위해서 쿠데타를 방지하는 것이 첫 순서다. 대통령을 누가 하든 오히려 먼저 하면 실정(失政)이 들어 나기 쉽고 나중에 하면 더욱 국민의 지지를 얻어서 대통령자리가 더욱 빛날 것이 아니냐고 했더니, 듣는 사람도 정신분석을 하는 정신과 의사이니 수긍을 하면서, 그래도 그 투쟁정신은 모델이 될 수 있지 않느냐고 한다.
물론 나는 그 불굴의 투쟁정신은 역사에 남을 귀감이라고 동의를 했다. 내가 떠난 일주일 후에 김씨가 그 모임에 나타났다고 한다. 그 모임의 회장이었던 내 제자가 변명은 듣지 않겠다고 하면서 내가 한 얘기를 그대로 했더니, 돌아가는 길에 계단에서 쓰러지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 일주일후에 미국의 한글신문들에 양 김씨 공동명의로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앞으로 둘이 손을 잡고 한국 민주화를 위해 싸우겠다는 맹서를 했다고 들었다.
우리의 민주적인 전통
최근에 4.13 개헌유보 성명으로 학생과 많은 국민들의 시위가 한창일 때, 마침 국제학술 세미나에 온 미국의 정치학 교수와 한국교수 셋이 저녁을 같이 한 적이 있다. 미국서 온 교수가 한국의 지식인들이 김씨를 좋지 않게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아마 김씨가 고통을 받고 있을 때 한국의 지식인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해서 죄책감 때문이 아닌가 하고 우리에게 물어왔다,
일반적으로 우리 귀에 들어오는 말은 집권을 하면 독재를 할 것이다, 보복을 할 것이다는 우려스러운 점이다. 한국교수는 측근도 김씨의 권력욕을 우려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적개심이 숨어 있는 증거이니, 막연한 불안감을 주기 때문이 아닌가?
또한, 김씨는 그런 위험스런 느낌은 주지 않지만은 아직도 어머니가 보고 싶다느니,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데가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미국교수는 2억의 인구 중에 한 사람의 대통령감을 찾기가 힘들듯이 한국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이 일이 있던 날이 여당의 노대표가 폭탄선언을 하기 전날이었다.
노대표와 전대통령이 6.10 이후의 대다수 국민들이 바라는 민주화 열망을 아무 조건없이 다 받아들이고 실천에 옮긴다는 발표는 전 국민 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놀라게 했으며 환영할 일이다.
평소에 내가 주장해 온 바, 우리 민족은 가장 민주적인 전통을 삼국시대 이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신라의 화백(和白)은 만장일치라야만 가결되는 민주적인 전통이고, 조선조 시대에는 임금의 권한을 제약하는 공식기구가 여섯가지나 있었던 점. 그러나 무엇보다도 단군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의 정신과 유교의 근원이 우리 조상인 동이민족(東夷民族)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로서 우리의 심성의 핵심은 세계적이고 인간적인 인(仁)이라는 것을 우리는 다시 한번 깨달아야 될 줄 안다.
근자에 국민의 민주화 의지에서 보여 준 완전한 국민화합은 8.15 광복과 같은 느낌을 온 국민이 느꼈을 것으로 생각이 된다. 우리가 지금과 같은 마음으로 모든 일을 처리해 나간다면 단순한 선진국이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면에서 가장 모범적인 국민이 될 것을 나는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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