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3인 월드컵 열기 진단 / 한국인 부정적 두뇌 회로 긍정·낙관적으로 확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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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댓글 0건 조회 289회 작성일 22-12-26 16:43본문
[중앙일보 / 2002-6-25]
홍혜걸 의학전문기자·의사 esther@joongang.co.kr
정신과 의사3인 월드컵 열기 진단
“한국인 부정적 두뇌 회로 긍정·낙관적으로 확 바꿨다”
자기비하 ‘엽전사상’ 말끔히 씻어
세대·지역갈등 녹이는 에너지 창출
월드컵 열기가 하늘을 지르고 있다. 수백만 명이 뛰쳐나와 거리를 붉은 물결로 뒤덮는 응원모습은 활활 타오르는 거대한 용광로를 연상케 한다. 국민적 사기가 이처럼 충천한 적이 있었을까. 유치원생에서 백발노인까지 목이 터져라 “대~한민국”을 외쳐대는 전 국민의 혼연일치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정신과 의사3명이 절정에 달한 월드컵 열기를 긴급 진단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한국의 월드컵 열기를 어떻게 봐야 하나, 긍정적 평가가 많지만 집단 히스테리 또는 스포츠 국가주의의 발로일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오는데
▶ 이동식-집단 히스테리란 집단전체에서 비이성적 행동과 함께 경련. 현기증. 마비 등 신체증상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사이비종교의 집단자살에나 해당하는 용어이며 이번 월드컵 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스포츠 국가주의란 비판 역시 이번 열기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간 자발성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동의 할 수 없다. 일부 지식인들의 월드컵에 대한 비관적 태도는 우리국민의 수준을 무시한 것이다.
▶ 김종하-고려시대 對(대) 몽고항쟁에서 외환위기직후 금모으기 운동까지 한민족이 발휘했던 저력이 고스란히 드러난 축제라고 볼 수 있다. 단순한 한풀이 광장이 아니다. 훌리건으로 상징되는 파괴적 서구 응원문화와 달리 수백만 명이 질서정연하게 예의를 지킨 사상초유의 고품격문화운동이라고 봐야한다. 우리는 자부심을 가질만하다.
-이번 월드컵 붐은 우리국민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 김광일-정신의학적으로 지금까지 우리민족최대의 콤플렉스는 패배주의로 상징되는 일제시대의 엽전사상이다. 이번 월드컵은 우리의 무의식 속에 잠재된 엽전사상을 말끔히 씻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응어리진 한을 마음껏 풀어낸 카타르시스의 장이었다.
▶ 이동식-지난해 미국정신의학회에서 저명한 뇌 생리학자이자 노벨상수상자인 에릭 칸델 박사는 긍정적 사고를 자주 경험하면 신경세포의 구조가 개체의 잠재능력을 증대시키는 쪽으로 변화된다고 피력한 바 있다. 뇌가 정신을 지배한다기보다 정신이 뇌를 지배한다는 뜻이다. 이번 월드컵은 그 동안 우리를 억눌러온 ‘우리는 안돼’란 엽전사상에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쪽으로 국민의 두뇌회로를 혁명적으로 바꿔놓았다. 월드컵을 계기로 우리국민의 누되는 확실하게 적극적이며, 낙관적이며, 긍정적인 방향으로 사고하도록 변모하고 있다. 월드컵은 하늘이 부정적 사고에 시달려온 우리민족에게 선사한 최상의 치유제다.
-붉은 악마의 역동적이면서도 질서를 지키는 응원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 이동식-우리국민의 착한 심성이 고스란히 드러난 결과다. 역사적으로 외국에서의 축구 응원은 지역간 봉건영주의 영토싸움에서 비롯된 탓에 전쟁을 방불케 하지만 우리에겐 축제로 승화됐다. 면면히 내려온 한국인의 착한 심성이 거대한 힘으로 작용해 군중심리에서 비롯될 수 있었던 소수의 폭력과 무질서를 압도했다.
▶ 김종하-붉은 악마에게서 우리젊은이의 미래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은 철부지가 아닐뿐더러 기성세대와 달리 각종이데올로기와 콤플렉스부터도 자유롭다. 이들이 세계인으로서 한국의 위치를 빛내줄 것으로 믿는다.
-월드컵 이후 나타날 정신적 공허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 김광일-정신적 공허는 오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 월드컵으로 형성된 거대한국민적에너지는 가만히 내버려둬도 우리국민 가슴속에 남아 스스로 자라는 결정(結晶)처럼 내재화된다고 본다. 다만 지속적인 카타르시스의장이 필요하다. 우리민족은 원래신명이 많은 민족이었다. 지방마다 고유의 축제가 있었다. 그러나 일제시대에 대부분 사라졌다. 이를 다시 부활시킬 필요가 있다. 다만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라야 한다.
▶ 이동식-마냥 착하기만 해선 곤란하다. 정신의학적으로 갈등과 분노는 안으로 삭이기보다 밖으로 적절히 발산하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한국인에게 화병과 속병이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월드컵열기를 대신할 국가적 어젠다(의제) 마련이 필요하다. 이점에서 대선에 관심을 쏟을 필요가 있다. 연말 대선을 정치꾼의 진흙탕식 싸움보다 올바른 지도자를 뽑는 또 하나의 국민적 축제로 활용해야한다.
▶ 김종하-냄비근성은 경계해야 한다. 이미 형성된 거대한 동력을 국운상승으로 연결시켜야한다. 칸영화제에서의 감독상수상과 한류열풍에서 보듯 이제스포츠에서 정치경제, 문화 등 다른 분야로 이 에너지를 승화시켜야 한다. 신구세대와 지역갈등, 빈부격차 등 그 동안 우리를 짓눌러온 갈등요인들을 모두 이 용광로 속에서 녹여내자
사회·정리-홍혜걸 의학전문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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