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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우도

서양정신치료와 비교한 도정신치료의 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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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댓글 0건 조회 239회 작성일 22-12-26 16:59

본문

정신치료는 치료자가 자신의 인격(人格)으로써 동토에 떨고 있는 환자에게 봄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 이동식

도정신치료(道精神治療)의 정수(精髓)는 얼은 땅에서 떨고 있는 환자에게 봄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이것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치료자는 자신의 마음을 정화해야 한다. 이것을 정심(淨心, 空, 불교), 심재(心齋, 懸解, 장자), 무위(無爲,노자), 정신분석에서는 투사(投射, 역전이(逆轉移))가 없는 것을 말한다.

도정신치료(道精神治療)는 도(道)와 서양의 정신분석과 정신치료들을 융합(融合)한 것을 말한다. 서양의 정신치료는 현존재분석(現存在分析), 실존분석(實存分析), 내담자중심치료(來談者中心治療), 무아정신치료(無我精神治療), 영성신학적 상담들을 포함한다. 이러한 서양의 정신치료들은 동양의 도(道)의 영향으로 발달되었으며 현재도 계속 도를 지향하고 도에 가까워지고 있다. 도(道)란 실재(實在)이고 현실이고 투사(投射)가 없는 진여(眞如)이고 전이(轉移)가 없는 것이고 성숙된 인격이고 개념(槪念)이나 이론(理論)과 기법(技法)을 넘어선 것이고 무위(無爲), 공(空), 자비(慈悲), 인(仁), 신의 은총(恩寵), 공감(共感)과 자기조복(自己調伏)을 뜻한다.

서양에서는 정신분석은 초심리학(超心理學)에서 임상이론(臨床理論), 경험에 가까운 상호주관(체)성(相互主觀(什)性), 관계이론(關係理論), 맥락주의로 이동하고 있다.그러나 아직도 이론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도정신치료는「핵심감정(核心感情)」을 마음에서 덜어냄으로써 이루어진다. 이것을 약1,000년 전에 중국(中國) 송대(宋代)의 대혜선사(大慧禪師) 서장(書狀)에서 기술하고 있는 "애응지물(碍膺之物) 기제각(旣除覺)"이라는 "가슴에 거리끼는 물건을 없애면 각(覺)"이라는 것과 통한다. 애응지물의 배후에 있는 것이 핵심감정이다. 서양정신치료에서는내담자중심치료가 도정신치료에 가깝다. 이론과 기법이 없고 직지인심(直指人心)만이 있기 때문이다. 핵심감정, 정심(핵심감정의 제거), 자비심(공감)이 3가지 키워드다.
서양의 정신의학과 정신치료는 환자를 이해(理解)하고 기술(記述)하는데 몇 단계를 거쳐 왔다. 처음에는 환자를 관찰해서 기술(記述)했고 다음에는 설명(說明), 해석(解釋), 이해(理解)를 하려고 했다. 이상은 객관적인 관찰이다. 다음으로 참여적(參與的) 관찰을 거쳐 공감(주객일치(主客一致))으로 왔다. 그러나 아직도 이론에 묶여있다. 도정신치료는 서양정신치료가 이론과 기법에 중독되어 있는 것에 대한 치료다(그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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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인자로서 치료자의 인격, 관심, 사랑(Freud), 치료적인 에로스(Seguin), 도우려는 열망(J. Frank), 감화(感化), 하이데거의 배려(Sorge)와 공감 등이 다자비심(慈悲心)으로 귀착이 된다.

게오르그 피히트(Georg Picht 1972)는 이론으로는 진리에 도달할 수 없으므로 명상(meditation)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그는 이론은 플라톤(Platon)의 형이상학의 산물이고 이론은 논리에 토대를 두고 있고 논리는 독단(獨斷)이라고 했다. 서양의 문화나 과학은 플라톤의 형이상학의 파생물이고 따라서 자연과 사회 인간을 파괴한다고 역설했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독단인 이론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윌리암 바렛트(William Barrett 1956)는 도는 플라톤 이후 서양 철학자가 갇혀있는 “개념의 감옥”으로부터 서양 철학자를 해방시켜주는 치료제라고 했다.

마이클 폴라니(M Polanyi 1958)의 개인적인 앎, 피. 브릿지만(P Bridgman)은 진리는 사적(私的)이지 공적(公的)인 것이 못된다고 주장했다. 진리는 진리를 경험한 사람에게만 전달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불교에서 말하는 해오(解悟, 개념적이해)와 수행으로써만 깨달을 수 있는 증오(證悟)를 구별하는 것들은 진리는 개념적인 지식으로는 경험을 할 수 없고 오로지 수도(修道) 또는 경험으로써만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데는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표1).

위대한 발견은 어떠한 명백한 것을 깨닫는 것이다. 그대가 눈을 뜰 때까지 기다리며 그대를, 그대의 얼굴을 응시하고 눈앞에 있는 것을 보는 것이다. - 마이클 폴라니(필자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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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핵심감정

1960년 31~2세의 재벌 환자가 물 한잔 마시는 데에도 자기의 핵심이 들어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했다. 몇 해 후에 Carl Rogers가 상담한 미스 Mun이라는 여자 환자의 면담 필름을 보고 환자 어릴 때 생긴 핵심감정을 그 자리에서 다시 경험하고 있는 장면을 보았다. 1965년 모(某)역경위원이 우울증으로 입원, 7일간 말이 없다가 대혜선사의 서장을 펴놓고 군데군데를 물어 보는데 대답하는 끝에 불교란 집착을 없애는 정신치료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 후에 곧 동국대학 총장 조명기 박사 추천으로 행원(숭산)스님으로부터 참선지도와 서장을 공부하는 중에 “애응지물(碍膺之物)을 없애면 각(覺)이다"라는 구절에 모든 것이 풀렸다. 애응지물이 바로 핵심감정이다.

서양정신분석이나 정신치료에 있어서 콤플렉스(Jung), 중심갈등, 중심적 문제, 중심역동, 핵심역동, 주(主)동기, 핵심감정적인 constellation. 최근에는 중핵감정(core emotion)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이상의 모든 말은 객관적인 기술이다. 그러나 핵심감정은 주관적 또는 주체적으로 느끼는 감정차체를 말하는 것이다. 이 감정은 공감으로써만 느껴지는 것이고 말로써 전달될 수 없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심전심(以心傳心)이고 말로 할 수 없는 불립문자(不立文字)다. 

2. 완전한 공감을 달성하려면

도정신치료는 도와 서양의 정신치료의 융합이고 정신치료의 궁극적인 목표다. 서양정신치료를 공부함으로써 도를 더 잘이해할 수가 있다. 도를 공부하고 수도를 함으로써 정신치료를 더 잘 이해하고 치료를 잘 할 수 있다. 수도는 스승의 도움으로 자신의 마음을 봄으로써 핵심감정 또는 사랑과 미움을 벗어나는 것이지만은 주로 자기 자신이 해야 한다. 가장 좋은 길은 좋은 치료자를 만나서 자신의 핵심감정을 자각하고 정신치료와 수도를 병행을 하거나 정신치료 후에 수도로 넘어가는 것이다. 도와 정신치료를 합친 것이 도정신치료다. 완전한 중립성은 무위(無爲) 즉 완전한 정심(淨心)이고 공(空)이고 자비심(慈悲心)이다. 저항은 치료자의 역전이에서 생긴다.



3. 심재(心齋)

「인간세(人間世)」편 - 장자
“사람을 교화하려면 마음을 재계해야 하는데 마음의 재계를 하려면 뜻을 한 가지로 가져라. 그래서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들으며 마음으로 듣지 말고 기(氣)로써 들어라. 듣는 것은 귀에서 그치고 마음은 부합(符合)하는 데서 그친다. 허(虛)나기는 허해서 온갖 걸 다 포용한다. 오직 도는 허한데서 모이니 허한 게 곧 마음의 재계이다”(그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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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전통의 정수(精粹)는 道(儒敎, 佛敎, 老子, 莊子)다. 다른 말로 하면 정심이요, 콤플렉스(碍膺之物)를 제거하는 것이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고 투사(投射)를 없앰으로써 인지적(認知的) 왜곡(歪曲)을 교정(矯正)하는 것이다.

Medard Boss(1976)는 정심(淨心)의 입장에서 보면 최선의 서양의 정신분석 수련(修練)도 입문(入 門)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서양의 정신분석이나 정신치료에서는 치료자가 해야 할 일은 환자로 하여금 될 수 있는 대로 자유롭게 자기 마음을 드러내게 해서 진정한 자기를 직면케 하고 환자의 왜곡(전이)과 치료자의 왜곡(역전이)을 제거하는 것이다. 모든 이러한 왜곡,즉 착각(錯覺)을 없애면 완전한 공감(共感)을 할 수 있다. 치료자와 환자 사이의 장벽이 없어지고 주객일치(主客一致), 주객합일(主客合一)이 이루어진다.

어떻게 하면 완전한 共感能力을 얻을 수가 있는가?

한자(漢字)의 성(聖)자(字)는 耳(귀), 口(입), 壬(맑다)의 석자로 구성되어 있다. 귀와 입이 맑고 밝다는 뜻이다. 의사소통이 잘 된다. 대화(對話)의 왕(王)이라는 뜻이다. 사전의 풀이를 보면 聖無所不通 所謂 聖人者 知通乎大道 應變而不窮 能測萬物之情性者也로 되어있다. 이것이 완전(完全)한 공감이다(그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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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성숙(人間成熟)의 이러한 단계에 도달한 사람을 유교에서는 성인(聖人)이라 하고, 불교에서는 부처, 노장(老莊)에서는 진인(眞人), 지인(至人)이라고 한다. 이 세 가지 교(敎)에 있어서 마음을 정화(淨化)하는 기술(記述)에서 가장 자세하고정확한 것은 불교이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불교의 기술을 빌려서 설명하기로 한다.

불교(佛敎)에서는 주객일치(主客一致), 즉 완전한 공감에 도달하려면 나와 대상(對象) 또는 현실(現實) 사이에 놓여 있는 세 가지 장막(帳幕)을 걷어 치워야 한다(그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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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장막(帳幕)은 별업망견(別業妄見)이다. 이것은 경험이 다른 데서 생기는 착각(인지적 왜곡)이다. 두번째 장막은 동분망견(同分妄見)이다. 이것은 문화적(文化的) 차이(差異)에서 오는 착각이다. 마지막은 생사지심(生死之心)이다. 이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恐怖)다. 처음 두 가지 장막을 걷어치우고 불안(不安)없이 죽음을 직면(直面)함으로써, 즉 육체(肉體)의 질곡(桎梏)을 벗어남으로써 착각(인지적 왜곡)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다. 이것이 진여(眞如), 주객일치, 착각(투사, 왜곡)없는 완전한 공감이다.

선(禪)에서는 진면목(眞面目)에 도달하려면 360度를 돌아야한다(그림5). 영점(零點)에서는 산(山)이 산(山)이고 물은 물이다. 180度 경계(境界)에서는 산(山)은 산(山)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 환자에게 무엇이든지 마음에 떠오르는 대로 보고하라고 하면 환자는 과거에 직면하기가 어려워 억압해 두었던 부정적(否定的)인 감정(感情)을 보고한다. 이 단계에서는 부정적인 감정이 부분적으로 억압되어 있고 동시에 긍정적인 감정도 억압되어 있다. 그러나 환자가 과거에 억압할 수밖에 없었던 부정적인 감정을 쏟아놓게 되면 어머니를 죽이고 싶은 정도까지의 적개심을 자각하게 된다. 180度 경계(境界)에서는 어머니를 죽이고 싶다고 한다. 이것이 산이 산이 아니고 물이 물이 아닌 경계(境界)다. 가치(價値)의 완전한 전도(顚倒)다. 사랑이 미움으로 둔갑한다.

어머니에 대한 모든 부정적인 감정을 쏟아내고 미움의 이유를 이해하면 어머니로부터 받은 사랑을 느끼기(깨닫기) 시작한다. 위장(僞裝)없는 사랑과 미움을 받아들이고 이유를 이해하면 사랑도 미움도 없다. 이것이 부정과 긍정의 감정을 완전히 받아들이는 것이고 산이 산이고 물이 물인 경계다. 360도 전환이고 위장이나 투사가 없는 현실(內外의)이다(그림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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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국사(普照國師)는 수도(修道)의 성과(成果)를 검증하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도(道)가 익었다는 것은 과거의 사랑과 미움의 대상을 눈앞에 가져와도 사랑과 미움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고, 그러나 새로운 사랑과 미움의 대상을 눈앞에 가져오면 사랑과 미움이 일어난다. 걸림이 없는 무애(無碍)의 경지(境地)에서는 새로운 대상(사랑과 미움의)을 눈앞에 가져와도 사랑과 미움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 단계에서는 어떤 특정한 대상에 대한 사랑과 미움이 없이 ‘차별이 없는 자비(慈悲)가 있을 뿐이다’.(필자) 보조(普照)는 참선(參禪)의 열가지 병을 대치(對治)하는 삼현문(三玄門)을 말하고 있다. 첫째의 체중현(體中玄)은 불교의 최고이론을 지식으로써 이해하는 것이다. 다음 문은 구중현(句中玄)이다. 이것은 선문답(禪問答)으로써 개념적(槪念的)인 지식(知識), 생각을 떨쳐버리고 눈앞의 현실(外的)을 가리킨다. 생각은 떨어졌으나 말이 붙어 있다. 세 번째 문이고 최고의 문은 현중현(玄中玄)이다. 良久, 默然, 棒, 喝(할), 擊禪床 등이다. 이것은 내적 현실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정심의 과정(過程)을 심우도(尋牛圖,그림 6)로써 보는 것이 적절하겠다. 소를 찾아 나선다(尋 牛). 다음은 소의 발자국을 본다(見跡). 다음은 소를 본다(見牛). 다음은 소를 얻는다(得牛). 소를 먹인다(牧牛). 다음은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騎牛歸家). 다음은 소는 잊어버리고 사람만 남아있다(忘牛存人). 다음 단계는 사람도 소도 다 잊어버린다(人牛俱忘). 다음은 본래면목(本來面自)으로 돌아간다(返本還源). 마지막으로 시중(市中)으로 들어가서 중생(衆生)을 제도(濟度)한다(入廛垂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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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수도의 과정을 정신치료로 치료가 되어가는 과정과 비교해 보면 심우, 견적, 견우는 환자의 핵심감정(核心感情), 핵심역동(核心力動)을 이해하는 것에 해당된다고 볼 수있다. 처음에는 부정적 감정이다. 득우(得牛)는 이러한 감정을 억압을 하지않고 느끼고 자각하고 있는 것에 해당한다. 목우(牧牛)는 감정(소)을 놓치지 않고 부리고 갈등을 해결하기 시작하는것이고 긍정적인 감정이 나타나서 자라고 커지는 것을 말한다. 기우귀가(騎牛歸家)는 문제와 현실을 받아들이고 해결하는 것이다. 처음의 소가 검은 것은 부정적인 감정이다. 흰점이 생겨서 확대가 되어 흰소(白牛)가 된다. 이것이 정심이고 사랑과 미움이 없는 것이다. 망우존인(忘牛存人)은 갈등은 해결되었지만 무아(無我)가 되지 못한 상태다. 이것이 서양의 정신분석의 한계(限界)다. 인우구망(人牛俱忘)은 집착(執着)이 없는 공(空)이다. 완전한 해방이고 무아(無我)다. 반본환원(返本還源)은 본래면목(本來面自)이요, 자신이나 현실을 투사(投射)없이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입전수수(入廛垂手)는 자기문제를 해결하고 무아(無我)의 경지에서 보살이 되어서 중생제도(濟度)를 하는 것을 뜻한다.

無意識의 淨化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서는 무의식(無意識)과 무의식의 투사의 기제(機制)를 분명하게 기술하고 있다.업식(業識)은 과거의 부정적(否定的) 긍정적(肯定的) 경험의 저장처다. 장식(藏識)이라고도 한다.

무의식의 투사(投射)의 과정과 기제는 다음과 같다. 업식(業識)이 전식(轉識)이 되어 현식(現識)이 된다. 여기까지는 무의식이다. 이것이 투사(投射)의 과정(過程)이고 기제(機制)다. 다음이 지식(智識), 다음이 상속식(相續識)이다. 이것은 의식(意識)이고 투사(投射)의 산물(産物)이다. 이것은 철학(哲學)이고 지식(知識)이고 그의 파생물(派生物)이다. 모든 것이 무의식의 투사고 망상(妄想)이다.

전식(轉識), 현식(現識), 지식(智識), 상속식(相續識)이 정화(淨化)되었고 업식(業識)의 흔적(痕迹)만 남아 있으면 보살(普薩)이다. 이 흔적(痕迹)마저 완전히 정화(淨化)되면 부처다(그림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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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는 투사(投射)가 없고 무의식이 없고 항상 깨어있고 무념(無念), 무상(無想)이다. 석가모니의 가르침의 핵심은 불취외상(不取外相) 자심반조(自心返照)다. 마음을 정화(淨化)함으로써 착각을 없앤다는 뜻이다. 선(禪)의 요체(要諦)는 교외별전(敎外別傳) 불립문자(不立文字)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 成佛)이다. 공자(孔子)는 술이부작(述而不作)이라했고 도(道)에 있어서는 말, 개념(槪念), 이론(理論)은 현실을 가리키는 수단에 지나지않는다. 불교에서는 지월(指月)이라고 한다. 離言絶慮. 得意忘言 道易親. 老子는 爲學日益 爲道日損 損之又損 而至于無爲.....無爲而 無不爲.
精神治療와 東西文化의 核心의 比較

플라톤의 대화(對話)의 파이돈에 보면 소크라테스는 ‘죽음은 영혼(靈魂)과 육체(肉體)의 분리(分離)’ 라고 했다. 육체는 감각, 쾌락, 감정이고 이것은 착각(錯覺)을 일으키는 육체의 족쇄다. 진리(知慧, 現實, 實相)에 이르려면 죽어야 한다.죽음으로써 진리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에 기꺼이 죽는다. 그러나 그가 죽고 나서 플라톤이후 서양의 전통은 마음의 정화(catharsis)를 지적(知的)인 추구(이론구성, 理論構成)로 하려고 했고, 동양에서 우리는 도(道)를 닦음으로써 마음을 정심 하려고 노력해왔다. 여기서 동과 서가 완전히 갈라서게 된 것이다. 불교에서 열반(涅槃(Nirvana))은 육체가 살아있으면서 착각을 일으키는 육체의 족쇄인 감정을 벗어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죽기 전에는 감정의 족쇄를 벗어날 수 없다고 믿었다. 이 점이 동서의 전통의 근본적인 차이다. 서양의 정신치료에서는 많은 유능한 치료자들의 경험과 정신치료 연구의 결과로써 치료자와 환자의 관계가 정신치료에 있어서 결정적인 요인이라는 것이 판명되었다. 이 관계는 환자를 공감하는 치료자의 인격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치료자의 공감적인 지각(知覺)과 응답(應答)이 환자가 해방되고 안전하게 느껴서 불안이나 위협이 없이 성장(成長)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Carl Rogers(1980)는 공감이 치유적(治癒的)이라고 했고 반면에 Heinz Kohut (Goldberg A. ed 1980)는 공감의 중요성을 영양적이고 치유적이라고 했다. 
그러나, Kohut는 공감을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자료수집과 이론구성의 도구로 삼는다는 오류를 범했다. 서양문화에서는 새로운 말, 새로운 개념,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야 인정을 받는다. 인정을 받고자하는 것은 신경증적인 동기다. 서양인은 진리(현실,실상)를 보는 순간 개념의 감옥(監獄)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여기서 동서문화(東西文化)의 핵심(核心) 내지 강조점( 强調点)을 비교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표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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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射를 그만두고 당신의 내면을 밝혀라(不取外相 自心返照)

정신치료 또는 수도(修道)의 최종적, 궁극적인 지상(至上)의 목표는 착각(錯覺), 즉 갈등을 일으키는 투사(投射)를 없애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수도의 핵심(核心)은 지관(止觀)이다. 즉 불취외상( 不取外相) 자심반조(自心返照)이다. 유교(儒敎)에서는 물구어외(勿求於外) 구저기(求諸己)다. Husserl의 현상학(現象學)에서는 이 도적(道的)인 ‘지(止, 멈춤)’가 판단중지(判斷中止)인 epoche에 해당(該當)되고, 피분석자의 자유연상(自由連想), 분석자(分析者)의 골고루 가는(evenly hovering) 주의( 注意)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무아심리학(無我心理學)은 자기(自己)를 초월(超越)하려고 함으로써 이론적으로는 도(道)의 목표(目標)와 같다. 실존정신치료(實存精神治療)와 현존재분석(現存在分析)은 동양의 도(道)에 접근하고 있다.

결론

치료자의 인격으로써 얼은 땅에서 떨고 있는 환자에게 봄을 가져다 주는 것이 도정신치료다. 최고의 치료자(至高)의 핵심은 자비라는 봄이다. 유교에서는 인(仁)이라고도 하고 기독교에서 하나님의 은총이라고도 한다.

도정신치료는 도와 서양정신치료의 융합이다. 이 양자에서 잡것을 가려내고 “순금”을 뽑아낸 것이다. 시들어가려는 정신치료와 수도를 회복시키고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어 활성화시키고 이 두 가지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많은 동양의 정신과의사들은 동양의 환자에게는 서양의 정신분석의 이론이나 기법은 적용할 수가 없다고 해왔다. 그러나 도정신치료는 서양정신치료와 수도의 “순금”은 본질적으로 같고 동서 전세계에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고( 故) 라이샤우워(Reischauer) 교수는 1970년대에 동아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21세기는 5000년 인류역사에서 동북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새로운 문명이 탄생한다고 했다. 그 새로운 문명은 동북아세아의 전통과 서양의 과학이라고 했다.필자의 생각으로는 동북아세아의 전통의 핵심은 도이기 때문에 그가 예언한 새로운 문명은 도와 과학의 융합이라고 생각한다. 정신치료가 과학이냐 아니냐 찬반이 있지만은 도와 정신치료의 융합은 라이샤우워가 예언한 다가올 새로운 문명의 도래를 알려주는 예시라고 볼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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